앤코이에게 전합니다

3기 선발자) 저는 신청서의 질문과 앤코이 글을 읽으며, 보수적인 시골 사회 속에 3대가 부딪치면서 느꼈던 갈등들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김** 2022-11-20 20:00 조회수 아이콘 381

 저는 ㅇㅇ,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농촌 사회는 기본적으로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중시하고 구성원들의 역할이 분명합니다. 저는 집안의 맏이로, 그 세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외부에 가장 먼저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특히 어머니는 저에게 과한 관심과 욕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ㅇㅇ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여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칭찬을 좋아해 무엇이든 열심히 했습니다. 저의 성취감과 어머니의 욕구가 균형을 이루었다 생각했습니다. 다만, 14살 때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돌아가시면서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골 사회는 14살의 아이를 가장으로 인식했고 그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였습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이었지만, 모두는 제가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를 지탱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집안의 체면을 위해 어머니는 혼자서도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것처럼 보여야 했고, 이는 제가 얼마나 우수한 학생인가에 달려있었습니다. 어머니의 교육열은 욕심에서 집착으로 변해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저는 한 번도 제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인정받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역할 밖의 무엇인가 – ‘ㅇㅇ 고등학교,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고 싶다.’, ‘공부 말고 다른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 ‘이곳을 떠나고 싶다.’ 등을 내비칠 때면 어머니와의 격렬한 갈등이 일었습니다. 처음에는 싸워도 봤지만 이내 포기했습니다. 저마저도 어머니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정말 어머니가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아서,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에게 순응할수록 그렇게 제 안의 저는 점점 죽어갔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명문대 사범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랐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교육계 공무원이셨고, 사무직이 많지 않은 시골 사회에서 교사는 몇 안 되는 인텔리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원하시는 대학에 입학하여 인생을 마감할 결심으로 공부했습니다. 입학 허가를 받고 죽으려고 한 것은, 가족이 부여한 역할에서 도망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 이유가 없어서 죽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오기였습니다. 스스로의 실력은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지만, 운이 따라 어머니가 원하시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첫 대학 생활은 해방의 시기이면서 공허함의 시기였습니다. 좋은 대학을 갔다는 명분으로 어머니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해 방황했습니다. 결국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약했고 14살 아이로, 시간이 멈춘 상태로 끝내 어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우습게도 답을 찾지 못해 입대한 군대는 저를 처음으로 완전히 가족의 역할에서 해방해 주었습니다. 군대는 쉬운 것만을 요구하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욕심도, 가문의 체면도 없었고, 스스로 무엇을 할 지 찾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다시 사회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정해준 것이 아닌 다른 것들을 경험하고자 했습니다.

 

  사범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교사나 공무원, 드물게 로스쿨을 준비합니다. 그 중, 특이하게 창업을 하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순히 제가 알던 것과 가장 이질적이라는 이유로 거기에 참여하였습니다. 창업에 뛰어든 초창기에, 같이 일하던 선배는 저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저는 가족으로 인해 너무 힘들었고 그들이 아닌 제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누군가가 강요하는 삶을 살지 않는 것’만네가 스스로 진정 원하는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지 않겠냐는 답을 받았습니다. 즉, 가족 때문에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정작 스스로 원하는 것은 한 마디도 꺼낼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성찰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가족 내 역할은 싫어하면서도, 그 임무를 수행하며 따라오는인정을 원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는 일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딸이라는 이유로 공부를 할 기회를 충분히 받지 못했습니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시절,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공부를 못하도록 책을 뺏기까지 했습니다. 평생 농사로 먹을 것을 구하던 할아버지는 딸이 쌀 한 톨 나오지 않는 공부를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몰래 책을 베껴가며 공부를 했었고, 그런 자신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결혼은 농촌 사회에서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을 기회였지만 아버지마저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다르게 저만큼은 다른 사람들에게 공부로 인정받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배부르게 먹고살지 못해서 어머니에게생존을 물려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생존을 물려받은 어머니는 반대로인정을 물려받지 못했기 때문에 제게인정을 물려주고자 했습니다. 저는인정은 물려받았지만자유는 물려받지 못했습니다.

 

 세대 간의 대물림을 보며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를 억압했던가족 내 역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누구 하나 괜찮은지 물어보는 사람 없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만 얘기하는 어른들이 지금도 원망스럽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인정을 물려주었고 과거의 저는 어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 선뜻 자유를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가족의 역할인정은 받은 만큼 감사하고, 억압한 만큼 끊고 나아가면 될 뿐입니다. 어른들의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그분들이 원하던 기회가 세대를 넘어 제게 왔고, 세상이 바뀌었기에, 저는 이제 그분들에게 받은 것으로 다른 선택을 하고자 결심했습니다.

 

  가족이, 어머니가 인정하는 것이 아닌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서고자 했습니다. 과거에는 좋아하는 것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잘해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해보지 않으면 밖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 무엇도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좋아한다는 것은 사실 좋아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정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부딪히며 싫어도 해보고 괴로워도 해봐야 그것이 내가 정말로 좋아서 하는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제 선택이 가족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여 물적, 심적 지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설사 어른들이 제 선택을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들의 노력은 저에게 더 좋은 교육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에게 받은 것을 활용하여 제가 진정 원하는 것들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남들이강요하는 삶을 살지 않는 것제가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없으면 도전하지 못하면서, 정작 인정을 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다고 착각했었습니다. 제가 싫은 것을 하지 않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구분하는 순간, 저는 멈췄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고 이전 세대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나 주지 않기에 용기를 갖고 찾아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무언가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엔코이가 말합니다.’에는단순히 Z세대들만의 문제일까요?(세대 간에 대물림 이해하기)’ 게시글이 있습니다. 베이비 붐 세대는 생존을 위해 감정을 억누르면서 사랑의 능력도 함께 억눌렸어야 했고 X세대는 노력을 중시하고 학력을 중시했으며 불공정한 대우에 참고 침묵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란 Z세대는 양육자의 따뜻하고 온전한 교감과 양육을 얻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 세대는 자식 세대에게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주려고 최선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매번 사랑, 관심, 인정과 같은 정신적인 부분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부모 세대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가장 갖고 싶던 것을 물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나머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받은 세대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자식 세대가 직접 찾아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엔코이 재단의 교육 사업은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기보다 직접 스스로 고민하고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저는 마음의 소리 신청서의 질문들을 보며, 보수적인 시골 사회 속에 3대가 부딪치면서 느꼈던 갈등들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엔코이가 말합니다를 읽어보며 제가 온전히 자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이전 세대들이 무엇을 물려주고자 했는지 이해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부모 세대에게 받은 것 중 가지고 가야 할 것과 스스로 새롭게 찾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무엇을 왜 주고자 했는지 이해하고 감사해야만 과거의 갈등에서 벗어나고 부모 세대의 가치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저뿐만 아니라 많은 친구들이 이전 세대와 갈등하고, 자신이 선택하기 전에 선택을 강요받고,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교육과정을 거치며언수외만을 공부하고, 또한 그것만으로 가치를 평가받으며 그 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세대는 무엇인가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 운이 좋거나 재능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저는 25살이 넘어 무엇인지도 모르는 디자인 공부를 독학으로 처음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도 좋아하는 것이 없어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당연한 것이며 노력하면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제가 용기를 갖고 도전할 때 가장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결국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군대에서, 학교에서, 스타트업에서 누군가는 확신이 없어도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계속 도전했습니다. 이렇게 도전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좋아하는 것이 없는 제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용기는 특별한 사람의 것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것이라고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미 엔코이 재단은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러한 사람들을 모아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엔코이 재단이 던진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한 사람들의 생각을 마주합니다. 제게 그랬던 것처럼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망설이는 사람들에게용기의 평범함을 전해줄 것입니다.


-ㅇㅇㅇ 드림



(※ 위 선발자의 세전메 영상은 선발자의 동의를 받아, 당시 재단의 규정에 따라 2년간 게시되었으며, 해당 기간이 종료되어 삭제되었습니다. 글만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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