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한 단계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2022-07-06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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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감각할까요? 대상에 관한 나의 인지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진실만을 인식하지 않고 두뇌에 형성된 이미지를 기반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는 감각 기관에 국한될 뿐이라고요? 우리는 타인을 바라볼 때 진실만 보지는 않습니다. 그 사람에 관해 내가 인식하는 ‘이미지’를 기반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죠.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새로운 정보들을 알아가며 그들에 관한 이미지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이 대인관계의 작동 원리입니다. 연인 사이의 알콩달콩한 콩깍지가 결국 시간이 흐르며 벗겨지는 것이 그 예시입니다. 관심을 기반으로 관계를 지속하다보면 종종 엇나가고 다투며 상대의 모난 점을 발견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서로에 관한 이미지가 바뀌어가며 보다 성숙하고 현실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물체를 볼 때뿐만이 아닌 연인, 친구, 가족, 상사 등의 대인관계에서 이미지를 기반으로 교류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첫인상과 연관되고, 그 사람의 평판이나 소문은 그가 소속된 집단에서 존재를 인식하고 평가하는 데 보탬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줄곧 미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소중한 정보들을 발설하거나, 나아가 그 사람의 험담을 아무렇지도 않아하는 대화 방식은 어느 샌가 우리 사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또한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을 향한 추측을 생성하고 함부로 퍼뜨리는 것 역시 첫인상, 이미지에 기반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타인으로부터의 추측과 험담, 그로 인해 생긴 오해의 이미지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바로 나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제공받은 정보를 토대로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이미지의 특성을 잘 이용한다면 오해의 이미지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새로운 정보의 출처는 내 깊은 자아(ego)입니다. _ 살아가면서 색안경을 끼고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 기존의 정보들을 토대로 위험을 경계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생명체의 본능이기에 우리가 앞으로도 색안경을 깨트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함께 살아갈 수많은 사람들에게 색안경을 벗으라고 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요구이며, 현실적으로 무의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새로운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색안경을 끼고 생활한다면, 내가 지닌 고유한 색을 파악하고 나만의 색채가 두드러지는 정보들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나의 identitiy를 파악하고, 나아가 나만이 할 수 있는 originality를 발굴해내어 사람들에게 제공해주는 방법입니다. 그들의 색안경에 내 고유한 색채가 부합한다면 이미지는 좋게 개선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반대겠죠. 이러한 대처 이후에도 추측과 험담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내 고유한 특징들(성과, 배려, 행동 등)을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려주며 신뢰를 쌓아가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타인의 잘못된 추측을 옅어지게 하고, 그러한 험담을 제공하는 사람을 자연스럽게 멀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_ 이제 하나의 질문이 남았네요. 그렇다면 나의 고유한 색은 무엇이고, originality란 무엇일까요? 사실 저는 이 질문의 근본적인 답은 아직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은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 1초 뒤의 미래도 모릅니다. 갑자기 운석이 떨어지거나 심부전이 오거나 아니면 그냥 잠잠할지도 모르죠. 또한 갑자기 심경의 변화가 생겨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마음먹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러한 인간의 변화와 잠재성을 믿기에, 살아있는 동안 함부로 내가 누구인지를 단정짓지 못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개구리의 기도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신(파란색)과 죽음을 눈앞에 둔 여자(초록색)의 대화입니다. 너는 누구냐? 한 여자가 중병에 걸려 가사상태에 빠졌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경계선을 방황하고 있는데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누구냐?" "저는 쿠퍼 부인입니다 이 도시 시장의 안사람이지요." "네 남편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제니와 피터의 엄마입니다." 목소리는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물었다 "네가 누구의 엄마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선생입니다. 초등학고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너의 직업을 무어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매일 교회에 다녔고 남편을 잘 보조했고.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네가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네가 누구인지 물었다" 결국 여자는 시험에 실패했던 것 같다. 다시 이 세상에서 보내졌기 때문이다. 병이 나은 다음 그녀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엔소니 드 멜로 '개구리의 기도' 중에서
이처럼 삶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여정은 죽음으로써 종결되며, 수명이라는 기간 동안 다양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파악하고 그들을 종합해 분석하는 것이 진정한 자아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앤코이가 말합니다’ 의 ego를 다룬 글을 잘 읽었습니다. 흥미로웠습니다. ego와 본질, 실재를 다루는 것이 기존과는 다르기도 했고, 제가 스스로를 관찰하는 메타 인지 식으로 감정을 다뤄왔기에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았으며 더 시야를 넓힐 수 있던 계기였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서적을 접하고 실존주의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고난과 역경에 처했을 때 수동적으로 구원을 바라지 않는 것. 내 스스로의 힘과 가능성을 믿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절대성을 지닌 본질은 우리가 감각하는 실존에 앞설 수 없다는 의견을 가지며 삶의 방향성을 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고민이 들었는데, 관찰자의 입장에 서서 나의 본능(감정이 투사된 ego들의 반응)들을 살펴보고,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를 알아차리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어떤 일에 분노하거나 슬플 때, 명상을 하며 내 스스로를 한 걸음 떨어져서 관찰하고 왜 내가 특정한 일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를 중립적으로 관조하는 태도입니다. 관찰하려는 나의 반응이 깊은 본능에 가까울수록 내 취향을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분석하고 파고들다보면 무의식의 영역에 접근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채로운 상황에서의 나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자기 확신을 가지고 꿋꿋이 앞길로 나아간다면 추측성 험담에도 굴하지 않는 주체성이 잘 만들어질 것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놓치지 않고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본인의 취향을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나만의 것, 나를 알기 위한 새 아침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응원의 뜻을 전합니다.
▷ 마무리 이번 고찰을 통해 감정에 대한 선입견을 깰 수 있었고 사람과 사람 간의 의사소통에 필요한 요소인 감정의 가치를 깨달았다. 이렇게 많은 상처와 스스로의 위로를 겪어보며 내면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었고, 이는 내가 지금까지 지인들에게 기여해온 것이며 앞으로 내가 기여해갈 가치이다. 앞으로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케이스와 환자분들, 보호자분들을 마주할 것이다. 환자 일행이 겪을 감정의 여파는 헤아릴 수 없을 것임을 명심하고, 말과 행동을 신중히 골라 처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표현들을 섬세히 골라 소통하고, 한 걸음 앞서 상대에게 손길을 내밀며, 슬픔에 공감하고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따스함이 나의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의사가 되어 환자와 소통할 때 환자의 방황과 고통을 더 가치 있게 여길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의사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의대생으로서의 20대 동안 수많은 방황과 고통을 겪으며 성장해나갈 것이고 환자들에게 확신을 줄 수 있는 의사가 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정체성의 핵심이며,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강점이다.
좋은 기회를 열어주신 앤코이에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지나치게 미래를 생각하고 대비하는 게 제 버릇이며, 저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항상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어떻게 나만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키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 머물러있었고, 이는 한 학기 내내 저의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엔코이의 공고문을 보게 되었고, ‘엔코이가 말합니다’의 글들을 읽어보며 저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 반갑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시된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해보며 조금 더 내면의 자아에 구체적으로 다가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1번 문항을 통해 늘 고민이었던 originality에 대한 구체적인 고찰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본인의 취향과 자주 사용하는 나만의 방식, 다양한 상황 속 나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 등이 나의 originality를 키울 수 있음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2번 문항을 통해서는 실존주의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고찰할 수 있었습니다. 실재에 집착하기보다는 타인과 상호교류를 통해 내가 현재 어떤 것을 어떻게 인지하는지를 파악하고, 나는 여러 믿음 중 어떤 것을 취할 것이며, 그 체계는 무엇인지를 고민해보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만의 논리적인 선택 체계가 나의 정체성의 요소임을 깨달을 수 있었고, 저의 믿음 체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문항을 통해서는 저의 강점과 인생에 걸친 감정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한 단계 단단한 자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이러한 기회를 열어주신 앤코이에 감사 인사를 드리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