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코이에게 전합니다

5기 선발자) 앤코이가 말한 ‘내 안의 시선’은 이제 내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거짓말처럼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깔끔히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정** 2024-09-02 20:20 조회수 아이콘 34

<비의지로 점철된 시절>

어렸을 때부터 여자에게는 교사가 제일 좋은 직업이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왔다. 부모님은 물론 외가와 친가 식구들마저 입을 모아 교대에 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우리 집안은 아빠, 엄마, 이모, 할아버지, 고모, 삼촌에 이르기까지 가족 중 대부분이 초등학교 교사를 직업으로 삼았다.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정년과 연금이 보장되는 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전례 없이 치솟았고, 그 시기를 몸소 경험하신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당신들의 직업이 안전한 교사였기 때문에 나라의 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다고 뿌리 깊이 인식했다. 덕분에 나와 동생은 커서 무얼 하고 싶은지 고민해볼 기회도 없이 교대에 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렇게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6년 내내 나의 꿈 노트생활기록부에는 초등학교 교사가 장래 희망으로 기록됐다. 나에게 교대는 학교 다니는 내내 쉬지 않고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일종의 트로피였다.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워 낮은 성적을 받으면 교대에 진학하지 못하고, 그럼 교사 자격증을 얻지 못하여 내 삶은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될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나는 과목을 불문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세부 특기사항에 기록하기 위해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교사와 어울리는지 계속해서 어필하고 증명했다.

 

나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학교와 학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힘들어했다. 목표한 대학에 들어갈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 슬퍼했고, 원하는 걸 배우려면 어느 학과에 지원해야 하는지 수십 번씩 찾아보고 상담했다. 나는 입학 시절부터 진로를 정했고, 그에 맞춰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다른 아이들처럼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마치 나의 앞길은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나를 둘러싼 사방이 오로지 육안만으로도 확인 가능한 안전한 통로같았다. 반면에 다른 아이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다. 나는 진작부터 철저한 준비를 해온 덕분에 그들처럼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며 안도했다. 그 과정에서 무의식중에 나와 남을 분리하고 우월감을 느꼈다. 나만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적용하여 나는 저 사람들과 달리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어.’라는 선입견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스스로에 대해 아무런 의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족들이 나에게 교사가 될 것을 강권하면서 내세운 설득은 안정된 보수방학에 누리는 즐거움이었다. 나는 안정된 보수가 주어지지 않는 삶은 방향키 없이 배를 조종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언제 어디서 폭풍우와 암석을 만나 난파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방향키가 꼭 필요하다 하더라도, 교사 말고도 안정된 보수를 보장받을 수 있는 다른 직업은 많았다. 방학에 대해서도 커다란 욕심은 없었다. 방학을 맞을 때마다 집에서 하릴없이 노닥거리시는 부모님을 볼 때면, 만일 그 시간을 좀 더 값어치 있게 사용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안에서 명확한 진로를 찾은 아이미래에 대해 방황하는 아이는 이미 성공과 실패라는 양극단에 자리하고 있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실패가 있고 나서야 비로소 성공이 있다.’라는 종류의 명언은 아무리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해도 결코 내 마음에 새겨지지는 못했다. 게다가 나에게는 실패와 더불어 무력감에 대한 큰 두려움이 있었다. 만일 여기서 내가 가던 길의 방향을 바꾸면, 이제까지 공들여 쌓아 올린 탑이 한순간에 쓸모없는 것이 될까 봐 두려웠다. 다른 사람에게도 정해진 길을 이탈하고 생각과 목적을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만, 고작 살면서 수십 번도 더 변한다는 장래희망을 바꾸는 게 나에게는 무척 큰일로 다가왔다.

 

지난 삼 년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목표에 불신이 든 순간, 아무리 스스로를 설득해보려 해도 의구심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의구심을 주위에 표출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둔 시기였다. 나는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여섯 장의 원서 중 두 장은 다른 학교에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느 학과에 넣을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다른 길을 한번 걸어보고 싶었다. 게다가 그동안 다른 아이들이 심리학과, 시각디자인학과 등 다양한 학과에 대해 알아볼 때 나는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직종에 대해 깊이 숙고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 생활기록부는 삼 년 내내 교대와 교사로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설령 다른 학교 학과에 지원하더라도 합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상담 결과만 돌아왔다. 부모님은 으레 고지에 이르기 전 사람 마음이 혼란해지는 건 정상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비친 꿈에 대한 불안과 의심은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일단락되었다. 나는 여섯 장의 원서를 교대에 지원했고, 여러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렇게 교대에 진학했다. 앞으로 나에게 남은 건 성실한 대학 생활 끝에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초등교사로 발령받는 일뿐이었다. 나와 동기들은 일반대학 학생들처럼 스펙과 경력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도, 험난한 취업 시장에 뛰어들 필요도 없었다. 그저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4학년이 됐을 때 열심히 공부하여 임용고시를 준비하면 모든 게 끝이 났다. 우리들의 평화로운 직장과 성공한 삶은 이미 보장된 것만 같았다. 나는 적당히 친구를 사귀고 적당히 술을 마셨다. 적당히 과제하고 적당히 게으름을 피웠다. 하지만 그 모든 적당함이 내 마음 한구석에 있는 불안과 의심을 때때로 건드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환경 속에서,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인생은 적당한 00’으로 도배되었다. 학생 시절 다섯 시간씩 잠을 자며 공부한 덕분에 꿈에 그리던 교대에 진학했지만, 교대에서의 한 학기는 그동안의 모든 세월과 노력을 무색하게 할 만큼 내 마음속에 어떠한 불꽃도 피워올리지 못한 것이다. 교대를 다니면서 내 마음을 가득 채운 건 트로피를 거머쥔 승리감도, 부모님과 친척들의 칭찬에서 오는 도취감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미래의 안정된 방향키를 얻기 위해, 현재 내 삶의 방향키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 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었다.

사회와 집단이 만들어 놓은 틀 아래에서 나는 어설픈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구분 지어왔다. 어느 누구의 합의도 들어있지 않은, 혼자서 간직해온 이기적인 기준이었다. 지금까지는 방황’ ‘미정이 사람을 실패로 이끌고 마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요소들이라 여겨왔다. 우리는 모두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인간의 삶은 불투명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나보다 먼저 세상에 태어나 삶의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불안과 불행을 두 눈으로 목격하셨고, 나와 동생들의 삶에서 그런 요소들을 없애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그 결과로 나는 이미 존재하는 틀에 스스로를 구겨 넣음으로써 별다른 풍파 없이 안정된 삶을 향유하려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면모를 지니게 되었다. 사람의 인식과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하나의 고정된 틀에 자신을 욱여넣은 사람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힘을 잃어버린다. 작년의 나의 상황이 그러했다. 안정된 삶과 직장을 보장해준다고 믿었기에, 의심을 떨치고 스스로를 억지로 구겨 넣었던 기존의 틀이 철저하게 망가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2023서이초 교사 자살 사건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교사 사망 및 교권침해 사례가 수도 없이 벌어졌다. 나의 의심은 불에 기름을 부은 듯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인터넷과 뉴스에서 보여주는 교실의 풍경은 어른들이 말하고 내가 바라오던 꿈의 일터가 아니었다. 물론 많은 사건이 일부 학생과 학부모의 독단적 잘못으로 판단됐다. 하지만 이 사건들로 인해 교육계와 교육 현장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크게 달라졌다. 교육계 내의 보수적인 집단의식과 교사 개개인의 어려움에 대한 암묵적 방임, 그리고 더는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 학생과 학부모의 태도를 목격하면서, 내가 잡은 방향키가 과연 행복한 삶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인터넷만 들어가면 교대 입시 추락’ ‘교사들 집단 시위라는 제목의 뉴스 기사가 보였다. 내가 그토록 노력하여 들어간 대학이 이제는 수능에서 9등급을 받아도 합격 가능한 곳이 되었다. 이 모든 현실이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이제까지 내가 진정 원하는 걸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 속의 나는 매순간 과거에 대한 후회와 현재에 대한 불만족으로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오랜 세월 나는 앤코이에서 말한 비의지에 점철된 삶을 살아온 것이다.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의식을 형성하지 못했고, 그저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제시한 그럴듯한 직업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최종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허울뿐인 목표를 쫓고 있는 건 아닐지 불안했지만, 어쩌면 인생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존재와 삶에 대한 의심을 최선을 다해 억누르고 외면해왔다.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더불어 스스로에게 치미는 분노를 참을 용기가 없었다. 결국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나는 그토록 기피해왔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비의지를 깨닫고 인생의 변곡점 만들기>

 

당연히 성공으로 이어질 줄 알았던, 내 앞에 놓인 일직선상의 길이 돌연 방향을 비틀어 사방으로 갈라졌다. 당시에 나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의심과 불안을 떨쳐버리고 원래의 적당한 삶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도 교육계를 둘러싼 논란은 시간만 지나면 도로 잠잠해질 것이라며, 고작 여론 따위로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제 발로 나오는 건 배부른 짓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나의 결심은 교대의 추락한 인지도나 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앞으로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칠 직업, 그와 더불어 대학이라는 보다 넓은 장에 스스로 발을 뻗고 싶었다. 나는 부모님에게 크게 혼날 것을 무릅쓰고 입시를 다시 한번 준비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쓰러질 듯이 화를 내시면서 반대하셨다. 엄마는 입은 다물고 계셨으나 내 결정에 반대하는 기색만큼은 뚜렷했다. 나는 결심을 밀고 나가기 위해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혼 도장만 찍지 않았을 뿐이지, 오랜 불화로 몇 년간 별거 중이셨던 부모님을 찾아가 끝없이 설득하는 건 그분들에 대한 나의 죄책감을 한없이 무겁게 했다. 나를 사회 부적응자 취급하는 친척 어른들에게도 한 소리 들어야 했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가 교대와 교사로 가득했기 때문에, 입시에 재도전하려면 수능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나는 수능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고, 교대를 휴학하고 수능까지 남은 기한은 여섯 달 정도였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배가 불렀다는 질타를 쏟았지만, 나는 재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적어도 앞으로의 삶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대학이라는 배움터에 관해서,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을 내린 유일한 순간이었다.

 

주위에 나의 결정을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에, 재입시를 하는 동안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내가 결정한 길을 꿋꿋이 걸어가기로 다짐했을 때 느끼는 고독은 이전까지의 고독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전의 고독은 내 삶의 방향키를 잡지 못함으로써 비롯되는, 본인의 삶에서 소외되어 느끼는 고독이었다. 나의 삶은 철저한 비의지로 인해 앤코이에서 정의한 존재’, 즉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추월하려고 하는 존재들을 단지 경로를 이탈한 존재들로 치부했다. 그들이 쉬지 않고 의심과 고민을 거듭함으로써 겪게 되는 갈등과 자아분열이 내게는 전부 불필요하고 쓸모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저러한 모든 과정이 진정한 존재에 도달하고자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다른 사람 혹은 사회가 삶의 일부를 결정짓게 함으로써 주어지는 결과인 공허함과 무력감을 몸소 경험했다. 이제는 라는 존재의 내면에 집중하여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분명 누군가는 내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변곡점을 경험하며 얻게 된 가장 큰 수확은 실패와 성공에 대한 이전과는 다른 재정의를 내렸다는 점이다.

 

이전의 나는 사람이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믿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실패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했다. ‘성공이라는 열매를 따기 위해 실패라는 해충을 잡고 또 잡아냈지만, 결코 인간의 삶에서 실패를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비의지를 깨닫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허울뿐인 미래를 벗어나기로 다짐한 순간, 그동안 실패와 성공 사이에 그어왔던 이분 선이 무너지는 것을 절감했다. ‘실패란 내가 생각해오던 것만큼 치명적이지 않았다. 더불어 진정한 성공이란 어떤 말로도 정의될 수 없었다. 사회의 잣대를 들이댔을 때는 실패로 단정 지어지는 행동이 나의 내면에서는 존재를 위한 결정이 되었다. 앤코이가 말한 비의지와 그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비존재로부터 나의 내면은 탈출구를 찾으려 시도한 것이다. 이를 깨달은 순간부터 나의 내면에서 성공실패는 인생을 결정짓는 양극단의 두 요인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로 탈바꿈할 수 있는 공생 관계가 되었다. 더불어 삶의 불확실성과 방황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니었다. 이 두 가지가 있어야 비로소 존재는 존재함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지금까지의 나는 확실하고 안정된 삶을 위해 실패가 될 만한 요소들을 전부 끊어왔지만, 오히려 방황을 통해 불확실한 길을 택한 순간부터 진정한 의 존재를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앤코이의 끌어내는 교육>

 

굳이 먼 길로 돌아가려 하니.”, 내가 교대를 휴학하고 00대학교 교육학부에 재입학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건넨 말이다. 그들은 교육학부를 단순히 중고등학교 교사를 배출해내는 사범대와 동일시했다. 초등교사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자퇴까지 하였는데, 결국 교육학부에 들어갔으니 다들 이게 웬 생고생이냐고 한탄했다. 하지만 내가 교육학부에 지원한 건 오로지 교육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한 결과였다. 다년간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온 나는 한국의 고교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렸을 법한 의문을 간직하고 있었다. 바로 가정, 학교, 사회라는 집단이 학생 개개인의 도약을 방지하고, 그들로부터 창의적인 생각은 물론 자기 주도적 선택권을 몰살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부작용은 확연히 드러났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국가들 중 최상위이며, 오래전부터 고등학교 삼 년이 인생을 결정한다.”라는 소리가 통상적인 격언이 되었다. 과연 삼 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우리에게 매겨진 숫자가 남은 인생을 좌지우지한다는 믿음이 옳은 것일까? 왜 먼 길로 돌아가지 않고 반드시 일직선을 걸어야 한다는 걸까? 우리는 결과에 상관없이 먼 길로 돌아가기를 선택할 수 있다. 어른들의 선제적 경험에 미루어 젊은 세대들의 실패 확률을 늦춘다는 건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다. 인간은 본인의 선택에 대한 대가와 책임을 감당하면서 성장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실패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앤코이가 말한 내 안의 시선은 오늘날 학력주의와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마음속에서 타인의 시선내 안의 시선을 견주어 보는 순간, 우리는 그동안 셀 수 없이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타인의 시선에 좋아 보이는 행동, 물건, 진로를 택하면서 우리는 내면의 소리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내 삶의 잣대로 허용하는 순간, 우리는 삶의 진정한 목적을 소실하게 된다. 마치 최종 목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교대에 진학했지만, 그것이 결국 내가 아닌 타인의 바람이었다는 걸 깨닫고 좌절했던 것처럼. 주변 사람들의 질타를 당할 걸 예상하면서도 교육학부에 지원한 건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들은 결과였다. 지난 삼 년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용기를, 기꺼이 먼 길로 돌아가고자 하는 용기를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더불어 그들이 느끼고 있을 억압, 불안, 의심을 비정상으로 치부하지 않고 기꺼이 증폭시켜 함께 터뜨리고 싶었다. 이런 의미에서 연세대학교 교육학부는 다른 사범대학과 달리 교육의 질 자체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더불어 교육의 대상과 가르치는 내용에 일체 한계가 없었다. 우리나라 입시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국어, 영어, 수학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언어, 인성, 나아가 세계 시민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배워야 하는 내용들을 연구했다. 나는 이곳에 진학하여 그동안 남몰래 품어 왔던 의심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기 위해 심층적인 연구를 하고 싶었다.

 

앤코이가 말합니다.’를 읽어 내려가면서 계속 벅찬 마음이 들었다. 앤코이의 끌어내는 교육이란 내가 품어왔던 의심들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교육이었다. 특히 앤코이의 자신의 삶에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지난 과거 내가 도달하고자 했지만, 결국 교대에 진학할 때까지도 도달하지 못했던 물음이었다. 나는 인간이 자율성과 자기 주도적 능력을 지녔기에 위대하다고 믿으면서도, 현실적 미래에 관해 다른 사람들의 앞에 서면 마치 삶의 선택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굴었다. 실제로 많은 학생이 성적 혹은 사회의 기대치 같은 것들에 휘말려 원하지 않는 길을 걷는다. 이제는 학생 개개인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각인시키고 주위의 시선 따위는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교육해야 한다. 앤코이가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은 내면에 그들만의 신()을 품고 있다. ()은 특정한 계기 없이는 잠재돼 있을 뿐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추월해내는 원동력으로서의 ()을 일깨우는 건 바로 교육이 책임져야 할 중요한 역할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인간주의 교육, 즉 끌어내는 교육이 필요하며 이를 현실에 적용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지침을 마련하는 첫걸음으로 우선 지금의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최대한의 효율을 위해 인간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판단하고 있지는 않을까? 세계 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이 한국에서는 그저 기계적 인간을 양산해내고 있지 않을까? 결국 길이 정해진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가는 식의 교육은 사람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다. 나는 진실된 경험을 바탕으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수없이 재고하고, 앞으로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끌어내는 교육의 발판을 마련하고 싶다.

 

<앤코이를 내 삶에 끌어오기>

 

 나는 앤코이가 말한 대로 기억과 재생은 다른 것이며, 기억은 표면에 머무르는 것이지만 재생은 어린아이로 되돌아가는 것이다.’를 실천하기 위해 글을 쓰기 전 2가지 심리작용을 수행하였다. 우선 과거 기억의 재구성을 살펴보자.

 

나는 어릴 때부터 효녀소리를 들으며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적으로 따라왔다. 장래희망 뿐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친구, 좋아하는 책, 학교 성적에 이르기까지 부모님의 심한 간섭을 받아왔지만 그것이 당연한 줄로 알았다. 이런 나의 태도는 바로 작년인 2023, 비의지를 깨닫고 교대를 자퇴하면서부터 서서히 변했다. 지금까지 삶에서 옳고 그름의 가장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던 부모님의 가치관이 나를 좁은 물속에 가두려는 억압처럼 느껴졌다. 때로는 지금까지 속아왔다.’라는 생각과 함께 부모님에 대한 원망으로 마음이 괴로웠다. 다행히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한 나의 혼란을 앤코이의 단순히 Z세대들만의 문제일까요?’를 통해 새롭게 돌아볼 수 있었다. 앤코이의 글을 읽어 내려가며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은 우리의 부모님에 해당하는 X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에서 Z세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걸친 과도기적 세대라는 것이다. 조부모님은 전쟁과 독재로 인해 황폐해진 세상을 살았고, 생존이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부모님은 응당 받아야 할 감정의 자리를 공백으로 남겨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부모님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자식들에게 최선의 삶을 선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X세대인 아빠는 초등교사였던 할아버지로부터 교사가 돼야 한다.’라는 주장을 끊임없이 들어왔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다섯 형제와 함께 산골 마을에 살았는데, 교사가 된 할아버지와 달리 다른 형제들은 다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할아버지는 본인이 교사이기 때문에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고, 그 시골 마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며 본인의 자식들 역시 교사로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아빠는 안정적인 직장과 가정을 이뤘고, 본인 역시 만족했기에 나와 동생들에게 동일한 교육 방식을 적용했던 것이다.

 

앤코이의 과거 기억 재구성하기.’는 동일한 기억에 대해 본인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숙고하게 만든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끊임없이 되새기지만, 그 과정에서 당시에 느꼈던 나쁜 감정들이 서서히 증폭되는 현상을 경험한다. 과거는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 되고 우리는 앤코이가 말하는 재생에서 멀어진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과거의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면, 즉 내 안의 에고가 훨씬 희미했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더는 과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과거 기억 재구성하기를 통해 어린 시절의 가 가졌던 불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적 계급 의식, 비의지, 능력주의, 그로 인한 불공정한 지대추구적 이익을 향해 내가 느꼈던 거북함과 문제의식은 더 이상 비정상적인 게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 오히려 그러한 의식들이 모여 세상은 점점 발전한다. 이처럼 새롭게 깨달은 메시지를 어린 시절의 나에게 전해주고 싶다. “네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더라도 주변에는 너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네가 느꼈던 감정은 타당했고, 이해할 만 했으며, 나름 중요했다.”라고 전해주고 싶다. 만일 어린 시절의 내가 저런 생각들을 품었다면, 좀 더 이른 시기에 '진정한 라는 존재에 더 가까워지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았을까?

 

두 번째 심리작용인 가치 충전은 우선 나의 가치가 침해받은 경험을 떠올려야 했다. 상대에게 무시 받은 경험, 노력한 만큼 보상을 얻지 못한 경험, 인간관계에서 소외된 경험 등 가치에 상처를 입은 경우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앤코이가 말한 상처들의 연결 고리.’는 하나로 집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나의 행동과 선택, 그리고 마음을 좌우해온 가치는 바로 비교였다. 자기와 타자 혹은 타자와 타자를 비교함으로써 지금의 상태를 정당화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나보다 준비가 덜 된 상대를 만나면 내심 안도했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상대를 만나면 한없이 움츠러들었다. 자유와 행복을 중시했지만 결국 내가 속한 집단에서 어느 정도 상위권에 있어야 자유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앤코이가 말합니다를 읽으며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 깨달은 것이 있다. 비의지는 다른 사람에게 나에 대한 가치판단을 허용함으로써, 주도적 선택권은 물론 자기존중의 기회마저 앗아간다는 점이다. 결국 자기 존중감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끊임없이 나와 남을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된다. 이제라도 자기 존중의 가치를 충전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사람이 모두 평등하게 사랑받는 존재라는 인식을 굳혀야 한다. 성적, 외모, 재력 등 누군가의 일면만 보고 나와 상대를 저울에 올려놓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그러면 온전한 로 거듭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한 발자국 가까워질 수 있다.


<의사, 파일럿>

 

00대학교 교육학부에 입학한 후 나는 중등 멘토링 활동에 지원하였다. 한 학기 동안 두 학생의 멘토가 되어 활동하면서, 실제 교육 현장을 살펴보고 끌어내는 교육의 현실적 적용 방법을 탐구하고자 선택한 결과였다. 내가 담당한 멘티들은 반에서 나란히 1, 2등을 겨루는 아이들이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나의 출신 학교를 보더니 선생님은 당연히 중고등학교 내내 전교권이셨죠?”라며 흥분했다. 아이들은 대치동 학생들처럼 로열 코스를 밟고 싶다.”라고 말하는 등 학력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다. 한 달 정도 만남이 이어졌을 때, 나는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적힌 학습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빈칸에는 ‘00의사도 아닌 그냥 의사라고만 적혀 있었다. 고작 열다섯인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의사를 꿈이라고 적어 놓았길래 나는 조심히 물어보았다. “어떤 의사가 꿈이야?” 그러자 아이들은 그다지 진지하지 않은 태도로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어요.”라고 대답했다.

 

근래 한국은 힐러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의료계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많은 경우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며,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의치한약수의서연고등의 신조어가 유행한다. 의사자격증만 있으면 한평생 돈과 명예를 누릴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서일까? 의사가 꿈이라고 적어 놓은 학생은 이야기를 들어보니 드라마의 고문 장면도 제대로 못 본다고 한다. 하물며 좀비 영화도 잔인해서 못 보는데, 수술을 일삼는 의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학생은 그래도 할 수 있다면 해야죠.”라고 대답했다. 의사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데, 그저 모두가 원하니 나도 원한다는 식의 공부는 과연 학생들의 정신과 우리 사회에 이로울까?

 

지난 5월 강남에서는 한 의대생이 여자친구를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다른 데이트 폭력 살인 사건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가해자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공부하던, 많은 입시생과 학부모의 부러움을 산 의대생이었기 때문이다. 의대생이라면 의사의 사명에 걸맞은 책임 의식과 인성을 갖추어야 하지만, 해당 의대생은 무려 수능 만점자로 의대에 진학해 본과 4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도 사람을 살해했다. 이는 직군에 알맞은 사람을 선별하는 데 우리 사회가 적용해온 기준이 잘못되었음을 시사한다. 진정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책임 의식을 가진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하는 대신, 한 문제라도 많이 맞힌 학생들이 의사로 자라나는 현실은 그들과 사회 모두에 이롭지 않다. 더불어 한국의 의대 인기 현상은 학생과 학부모 사이에 집단 비의지를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진정 하고 싶은 걸 고민하고 선택하는 대신 일단 의대에 들어가자.”라는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면, 의대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 있으며 설령 의대에 들어가더라도 그다음 행보를 결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따라온 건 집단의 열망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의사가 꿈이라고 말한 학생에게 정말 하고 싶은 게 없는지 물었다. 그러자 학생은 잠시 망설이더니 파일럿이요.”라고 답했다. 비록 주변 사람에게는 의사가 꿈이라고 말해왔으나 남몰래 파일럿이라는 꿈을 숨겨둔 것이다. 학생의 모습이 과거의 나와 겹쳐 보였다. 아무 고민 없이 늘 교사가 꿈이라고 말해왔던 나 자신이 눈앞의 학생에게 투영되면서 진심으로 그 꿈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나는 그동안의 경험을 학생에게 들려주었다. 과거를 입 밖으로 내뱉자 마음속에 흩어져 있던 생각이 깔끔히 정리되는 것 같았다. 스스로 선택한 꿈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설령 크면서 꿈이 수십 번 변하더라도 그 모든 게 온전한 나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스스로 선택할 용기>

 

앞선 경험을 통해 앤코이의 부모로부터 가르침 받았으면 하는 핵심 가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우리는 사회에 날 때부터 주변 사람의 시선과 집단의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진정한 나를 잃지 않고 안정된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려면, 내가 소중히 하는 가치와 집단의 가치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 만일 어느 한쪽에 편중되는 순간 우리는 소외 혹은 비의지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경험한다. 그렇기에 집단에서 를 잃지 않고 앤코이가 말한 존재의 존재함을 계속 수행하려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선택이 사회적으로 용인받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면의 소리를 따라 자신만의 선택을 내리는 과정 자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다. 사실은 파일럿이 꿈인 학생도, 사실은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나도 앞으로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용기가 부족했던 것뿐이다. 만일 과거로 돌아가 부모님을 뵐 수 있다면, 혹은 내가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면 아이가 선택에 대한 두려움을 품지 않도록 가르치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선택을 회피하고 다른 사람에게 방향키를 넘기면서 경험하게 되는 비의지와 무력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거울 대화>

 

이제까지 나의 삶의 모토는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살자.’였다. 학업 성적, 대인관계, 외모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자기 자신을 가꾸려고 노력했다. 내가 속한 집단에서 상위권에 들고자 하는 욕심과 맞물린 결과였다. 언제나 가족 내에서는 말썽꾸러기 동생들과 달리 부모 걱정 안 시키는 든든한 장녀, 친구들 사이에서는 재밌고 상냥한 아이.’, 학교 선생님들 가운데서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각인되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닦았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나를 잃어버린 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나의 행동과 성격을 사회의 잣대에 맞춰 변형해왔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이러한 태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모두의 반대 속에서 학교를 자퇴하고 재입시에 도전했으며, 고생 끝에 원하던 학교 학과에 들어올 수 있었다. 비록 가족들은 앞으로 뭐 먹고 살래?’등의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지만, 온전한 나의 선택과 그로부터 얻게 된 만족스러운 결과를 확인하자 문득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믿음으로써 생기는 변화는 컸다. 어떤 일에든 도전하고자 하는 의욕과 용기가 생겼고, 주변 사람과 환경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훨씬 여유로워졌다. 전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느라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을 쉽게 꺼내 보이지 못했지만 이제는 어렵지 않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과거의 경험이 변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경험은 나로 하여금 그동안 억눌러왔던 도전 의식과 추진력을 발휘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지난달 교육학과 학술 교류 행사인 ()집합에 참석했다. 행사 주제는 우리나라 교육의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교육 불평등이었다. 교육 불평등은 내가 오래전부터 지녀온 문제의식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도권으로 올라오기 전, 나는 초중고를 모두 경남의 소도시인 진해에서 다녔다. 지금도 동생들은 그곳에서 학교 수업을 받고 있다. 학과 동기들에게 원래 살던 고향을 얘기하면 대부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지하철도 없는 시골에서 나는 인터넷을 통해 서울에서 벌어지는 입시 전쟁을 목격했고, 당시에는 다른 세상 이야기 같다고 느꼈었다. 학창 시절에 최선을 다해 공부했던 나는 막상 수도권에 올라와 재입시를 준비하면서 큰 난관에 봉착했다. 공부 실력은 물론이고 수능에 대한 나와 아이들의 이해도 자체에 큰 벽이 있었다. 오로지 교과서로만 내신 공부과 수능을 병행하던 나는 수도권에 올라와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사설 인강, 문제집, 학원들을 보며 큰 절망을 느꼈다. 나와 그들 사이에 메꿀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따라서 이번 학술교류를 통해 내가 경험한 교육 불평등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어떤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우리 팀은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에 기반하여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지대개념을 가지고 교육 불평등의 문제를 다루었다. 국내 교육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인 시험 중심주의 교육을 살펴보며, 시험에 합격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무한한 지대추구적 이익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논했다.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이게 된 믿음, 일단 합격하기만 하면 돼.’라는 믿음에 의문을 던지며, 합격자와 불합격자 사이에 결코 넘을 수 없는 방어벽을 세우는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재고했다. 더하여 이러한 통념과 제도가 교육 불평등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도록 묵인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제는 시험 중심주의 교육이 아닌 인간주의 교육’, 즉 앤코이가 말하는 끌어내는 교육으로의 전환을 위한 새로운 사회적 통념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해결 방안을 고안하면서 나는 내면의 추진력을 느낄 수 있다. 비의지의 탈피로부터 얻게 된 내면의 추진력은 나로 하여금 끝없이 기존의 관습과 정책에 의문을 품고 개선의 여지를 찾도록 부추겼다. 근 몇 년 사이에 나는 앤코이의 내면의 소리함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올해 초 앤코이를 접하고 앤코이가 말합니다.’에서 우리 사회가 깨닫지 못했던 비존재와 비의지의 독소를 알게 된 후,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기까지 진정한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무딘 애를 써 왔다. 그동안 외면해왔던 소리를 뒤늦게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비의지와 비존재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나를 내던진 만큼, 앞으로는 값진 경험에서 얻은 내면의 추진력으로 어떤 일에서는 끈기를 가지려 한다. 그것을 가지고 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교육, 끌어내는 교육의 본질을 계속 연구하여 어떻게 하면 눈앞에 놓인 현실에 차츰 적용할 수 있는지 알아내고 실현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세상에 기여하고자 하는 방식이며 진정한 존재가 되고자 결심한 다짐이다.

 

 세전메: 선택을 두려워하는 우리들에게

 

인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삶이 매순간 선택으로 인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 선택은 꿈, 진로, 대인관계 등 다양한 것들과 관련 있지만 오로지 내가 책임의 주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책임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선택의 주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요? 과연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리는 수많은 선택이 진정한 가 숙고한 끝에 내리는 결론일까요?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회는 너무나 많은 잣대와 기준을 우리에게 들이밀며 선택들 사이에 위계를 만들어냅니다. 이로써 선택을 내린 개개인 사이에도 눈에 보이지 않은 피라미드가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가 내린 선택들은 이 투명한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고자 하는 집단 무의식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평균에 머무르고자 내 안에 도전 의식과 모험을 억누르고 안정된 경로만을 택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앤코이가 지적한 비의지는 선택의 주체로써 끊임없이 선택을 종용당하는 학생, 청년, 어른들이 끝내 자신들만의 온전한 선택을 두려워하는 현상과 관련이 깊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답정녀는 이미 답을 정해놓고 질문하는 이들을 가리키는데요. 많은 사람이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본인을 끼워 맞추려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답정사회속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으므로 개인의 내면의 소리함과 그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창의성은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깨닫고 조금씩 비의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를 옭아맸던 주의의 시선과 평가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건 모든 인간의 욕망이기 때문에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선택을 내릴 때 내가 정말 원하는 선택일까?’ ‘결과가 불확실하더라도 나는 이걸 원해.’라는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중요한 순간에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세상에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것입니다. 선택을 내려야 할 때, 그것이 진정한 나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분명 인생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재단에 전하고 싶은 말>

저에 대한 소개는 충분히 한 것 같습니다. 재단에 전하고 싶은 말은 역시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앤코이 희망 장학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거짓말처럼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깔끔히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 느껴온 불안, 원망, 희망을 글로 풀어내면서 점점 더 스스로에게 용기가 생겼고, 진정한 나를 찾고자 하는 바람도 더욱 커졌습니다. 특히 앤코이의 기억 재구성하기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고, 그토록 원망했던 가족의 진실된 마음을 돌아보게 하면서 저를 눈물짓게 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아직 어리고 세상 경험도 부족한 저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선택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런 용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할 수 있는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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