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코이에게 전합니다

6기 선발자: 엔코이 덕분에 감각을 회복하고, 다시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송** 2025-10-07 13:43 조회수 아이콘 14




세전메: <상처는 연결의 시작입니다>


어릴 적부터 세상의 미세한 떨림에 감응하며 살아온 저는, 때로는 그 예민함 때문에 상처받기도 했고, 어린시절 창의성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점점 자기표현을 주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감정의 흔적들을 조형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을 거치며, 상처는 오히려 연결의 가능성이자 회복의 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의 내면과 감각을 신뢰하는 훈련이 필요했고, 그 길 위에서 저는 ‘앤코이’를 만났습니다. 단지 사고의 틀을 바꾸는 차원을 넘어, 제가 저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상처와 결핍은 감춰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오히려 연대를 가능케 하는 가장 인간적인 진동입니다.

고통은 삶을 관통하는 고리이며, 그 고리를 외면하지 않고 응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타인에게도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 메시지를 앤코이에 전하고 싶은 이유는, 저 역시 앤코이의 프로그램을 통해 나의 의지가 억눌려왔던 자리, 내 감정이 무시당했던 순간을 다시 들여다보았고,

그 안에서 감각을 회복하고 다시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제 조형 작업은 앤코이의 기억 재구성과 가치 충전 과정 중, 과거의 상처받은 나와 대면한 밤에 스케치를 시작했고,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제목으로 슬픔의 양가적인 감정들을  소멸되며 찢기는, 봉합된 조형물로 제작했습니다. 이는 사랑의 슬픔과 기억의 잔상을 담는 설치작업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하나하나 손으로 라텍스로 꿰매고 붙이며 지워지지 않는 감정의 흔적과 그 안의 회복 가능성을 담고자 했습니다.

또한 빅토르 위고의 <나는 거미와 쐐기풀을 사랑한다> 라는 시를 인용하여 사랑받지 못하고 버려진 우울한 존재들을 제작한 뒤 키스마크를 남기는 조형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모든 것이 우울할때 우리는 단 한번의 키스를 바라는 법” 이라는 구절처럼 작은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자 한 작업이였습니다.


저는 완성된 조형보다, 무너지고 흔들리는 감각을 담으며 사라지는 감정을 기억하고, 감각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제가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존재 이유와 역할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각자의 방식으로 흔들리고, 고통 속에서 말없이 스쳐지나가는 감정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그 감정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세전메는 그 연결의 시작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부디, 침묵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저는 그런 시간 속에서 제 진짜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진동을 따라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정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문학에서 큰 위안을 받으며 침묵의 시간을 가져왔습니다. 문학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과 죽음의 형태를 보면서 삶에 대한 방향성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진심으로 무언가를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그것을 이루게 도와준다” “사막은 언제나 신의 징표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것을 보려면 먼저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통해 삶의 가장 고요하고 연약한 순간에도 우리가 얼마나 단단해질 수 있는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결핍을 품은 존재가, 그 결핍으로부터 시작해 연대와 회복을 만들어내는 삶. 저는 그 가능성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앤코이와 함께 실천하고 싶습니다.


<나는 흐르고 있습니다. 예술가로서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


청춘으로서 방황할 때면 답을 찾고자 책을 읽었습니다. 현실이 답답하고 어려울 때면, 문학은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의 첫 구절에서 ‘진정한 철학적 문제는 자살이다’ 라는 문장과 함께 내가 자살하지 않을 이유를 찾으며 어떻게 살아야 될지 문학의 표지를 따라 가며 사색하며 끝없이 성찰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아직 살아있었고,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내 안에 멈추지 않는 떨림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저는 그 떨림을 느끼고 살아있다는 걸 확인받고자 했습니다. 그 떨림은 고통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깃든 지점. 삶의 균열 속에서 솟아오르는 무언가 ‘진실’에 가까운 것 이었습니다. 그것들을 마주할 때 그 순간들 안에서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사막은 언제나 신의 징표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것을 보려면 먼저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침묵. 그 안에서 처음으로 나를 지켜보며 나의 존재를 느꼈습니다. 엔코이에서 말하는 ‘내 안의 시선’ 즉 순수의식을 마주하며 다시 한번 글을 쓰는 지금. 내면의 침묵 속에서 진정한 자아와 삶의 이유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사랑하기 위해, 그리고 내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나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며 멈추지 않고 흘러갑니다.

다만 그 흐름을 감각하고, 잊지 않고 모양을 부여하는 것이 나의 과제입니다.


예술가로서 무너짐과 사랑, 상실과 창조 사이의 공진을 감당하며 예술이라는 그릇에 담아 타인에게 건네는 것이 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단지 나의 삶을 충만히 하는 회복의 과정뿐만 아니라 이 세계를 조금 더 다정한 방향으로 진동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서 제가 살아가는 존재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창작하며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엔코이와 함께 글을 쓰며 저는 다시 한번 되묻습니다. 나의 강은 어디로 흘러가고, 그 흐름 안에서 어떤 떨림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내가 느낀 미약한 깨달음도 시간이 지나면 망각되고 존재 이유가 흐려지곤 합니다. 20대 초반 이 세계를 사랑하며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을 했던 시간 속 지금, 현실과 외부세계에 흔들리며 내 안의 영혼을 바라보며 침묵하는 법을 잠시 잊은 것 같습니다. 엔코이의 비의지와 비존재, 에고에 관한글을 수십번 읽어보고 침묵하는 시간을 반복하며 다시 한 번 흐르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내가 그토록 완성하려고 하는 것이 흐름을 멈추게 하는 하려는 욕망임을 느끼며 ‘생명의 강의 흐름’을 따라 마음이 편안해짐을 경험했습니다.


바위에 부딪히면 강은 멈추지 않고 부드럽게 감싸 흐릅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고 돌아가도 언젠가 바다에 닿습니다. 고통과 슬픔도 더 극적으로 느끼고 피하기보다 함께 흐르고 스며들며 자연스러운 동행임을 깨달았습니다. 너무 빠르게 흐르려거나 바위를 깨 부시려고 했던 흐름의 시간들도 자연스러운 동행임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흐르는 강처럼 살아가는 태도로 그 흐름 속에서 존재를 신뢰하고, 스스로가 되어 흐르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무너짐 앞에서도 창조를 포기하지 않고, 상실 속에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으며, 어떤 형태로든 나로서 존재하며 흐르는 것. 이것이 지금, 송채연으로서 이번 생에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강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강은 내일도, 어제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흘러갈 뿐입니다.’ -[흐르는 강] 파울로 코엘료-

그래서 저는 오들도 존재의 떨림속에서 조용히, 하지만 확실히 흐르고자 합니다.


< 시인의 재능_ 자두를 보고 감동받을 줄 아는 능력>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서 ‘시인의 재능은 자두를 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이 문장은 제 삶의 방향을 말없이 가르쳐준 말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일상의 사소한 떨림에도 쉽게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교길의 스쳐지나가는 바람, 시들어가는 꽃잎 , 친구들의 사소한 말들도 자주 감각하며 살아왔고 그 섬세한 감각은 저를 종종 아프게도 했지만 동시에 살아있음을 가장 강렬히 확인해주는 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저의 강점은 바로 이러한 ‘감응하는 능력’입니다. 시인의 태도로 자연과 사물 인간관계 속에서의 미세한 떨림을 감각하고 기억하며 그것을 조형언어로 전환해 작업으로 풀어내는 것. 그 감각은 단순한 민감함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며 그 안에서 진실한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는 힘입니다. 섬세한 예민함은 때때로 상처를 쉽게 받고 움츠러들게도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아픔을 감각의 언어로 바꾸고 누군가와 연결할 수 있는 예술가적 자질로 발달한 것 같습니다.


예술가라는 불안정한 길은 걷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작업을 지속하면서 배울 수 있다면 작가로 삶을 살아감에 충만함을 느끼며, 작가로서 삶을 살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창조의 순간들은 늘 저를 살게 했고, 조형언어를 배우고 다듬으며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뿐 아니라, ‘어떻게 사랑할지’를 배워왔습니다.

작업을 이어오며 느낀 것은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묻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작업은 곧 나 자신을 사랑하는 과정이자, 세계를 이해하고 타인의 고통에 다정하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같이 되묻습니다 “나는 지금 충분히 감각하고 느끼고 있는가” “내가 느낀 떨림을 어떻게 시각화하며 세계에 따뜻함을 전달할 수 있을까" 


생의 떨림에 감응하고, 그것을 형태와 언어로 바꿔내며, 상처받은 감정에 형태를 부여하는 예술가. 내면의 고요한 회복을 촉진하며 사회와 개인 사이의 감정적 공백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충만한 감수성과 예민한 감각을 통해 세상의 상처와 흔들림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다시 사랑과 회복의 감각으로 세상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또한 저의 강점은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입니다. 때론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슬퍼해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저는 사람에게서 회복됨을 느낍니다. 함께 살아가는 세계에서 저도 누군가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감정에 쉽게 감응하는 특성 때문에 종종 우울이나 슬픔에 머무는 시간도 있었지만 저는 망각하는 행복한 인간이기도 합니다. 깊은 밤에는 울기도 하고 삶의 고단함에 지치기도 하지만, 아침이 되면 햇살과 함께 다시 망각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기억 속에 갇혀 있다보면 종종 작업을 지속하는데  우울감에 빠지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햇살과 함께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은 제게 주어진 또 하나의 강점이며 제가 창조를 멈추지 않고 예술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조금 느리지만 저는 언제나 직접 경험해보고 성찰하며 올바른 방향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이 내 삶의 결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생각할 때마다 때로는 불안해지기도 합니다. 최근에도 졸업 이후 작업을 어떻게 지속해갈지 고민하며, 다시금 저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어디에 머물러야 할까? 무엇이 진짜 나의 선택일까?’ 그 고민 속에서 저는 다시 한번 엔코이에서 배운 ‘분별력’의 10가지 특성을 천천히 정독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나친 단순화에 갇히지 않기’, ‘이익을 얻는 자를 의심하기’, ‘믿음보다 신뢰를 통한 체험으로 나아가기’, '가슴 중심에서 진동읽기‘, ’에너지의 방향‘ ’중도의 관점‘, ’이데올로기의 요소‘, ’결정하는 책임‘’실험을 통해 배우기‘ 같은 항목을 배웠습니다. 분별력은 단순히 ‘옳고 그름’을 가르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진실로 바라는 삶의 방향을 알아차리고, 그 방향을 향해 머무를 수 있는 내적 근력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엔코이에서의 깊은 내면 탐색과 정신적 훈련을 통해 저는 진심으로 깨달았습니다. 삶은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너머 내면의 빛을 인지하고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단지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뿌리를 들여다보고, 그 고요한 밑바닥에서 다시 연결성과 생명의 감각을 회복하는일. 그 속에서 자유의지의 법칙이란, 타인이 말하는 옳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면으로부터 충분히 경험하고 알아차린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저의 강점을 다시 한번 파악해보며 저 자신을 객관화해볼 수 있었고, 외부의 기준에 휘둘리기보다 내면의 떨림과 속도를 신뢰하는 삶, 그리고 지금 여기의 나와 더 진실하게 연결되는 선택을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옳은 방향이 설정되면 자신의 속도로 가더라도 끝내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제 저는, 그 질문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도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에 따뜻함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 글 역시 단지 하나의 신청서가 아니라, 살아가고자 하는 존재로서의 선언이였습니다. 제가 만들어갈 감각의 언어와 조형의 세계가,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에 조용한 떨림을 닿기를 소망하며 예술가로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재단에 전하는 말>


막상 글을 쓰려니 엔코이의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고 글을 쓰려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걸렸습니다.

글을 적으면서도 가르침을 또 인지하고 침묵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작성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제 내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여서 뜻깊은 시간이 였습니다.

저는 조형예술을 전공하며, 말이 되지 못한 감정과 잊혀진 가치들을 시각적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상처와 연약함, 불완전함에 감응하며 그것을 형태로 옮기는 일은 저에게 있어 삶을 통과해가는 방식이자, 세상과 연결되는 다정한 시도입니다. 앤코이의 가르침은 그런 저의 길에 커다란 울림을 주었습니다.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머무를 것인가, 누구보다 앞서 달리는 것보다, 어떻게 나와 연결되어 있을 것인가에 대해 묻고 또 사유하게 해주었습니다.

존재의 깊은 자리에서 묻는 이 질문들은 제가 예술가로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과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내면의 떨림을 듣고, 연결을 복원하고, 작지만 진실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

앤코이의 말씀은 저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다시 품게 해주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받은 이 배움이 헛되지 않도록, 언젠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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