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기 선발자) 앤코이 교육재단이 선발과정에서 제시하는 과정들은 가르침부터 생각, 깨달음, 실천까지의 모든 과정을 체계적이고 정확하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최**
2024-10-1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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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다 겪은 줄 알았다. (부제: 앤코이와 함께 예술을)
[교육에 대한 고민]
저는 소위 말하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사를 준비했습니다. 고등학교 내내 모든 시험에서 1등을 했고, 생활 기록부는 각종 활동으로 모든 칸을 꽉꽉 채웠습니다. 교육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고등학교 3년을 보냈고 나름대로 교육에 대해 많이 고민해 보았다 생각합니다.
또한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의 문제를 교육으로 해결해 보자며 정책을 고민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이원적인 OX 개념에 사람들의 결과를 끼워 넣고, 노력이나 과정 자체는 그저 부수적인 이야기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육대학교를 준비하면서 가장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자기 효능감을 자극하는 것에 관심을 뒀고,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에서 스스로 확신을 갖는 교육을 추구했습니다.
"진정한 교육이란 학교에서 배운 모든 지식을 잊어버린 후에도 남아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은 아인슈타인이 인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제가 교육을 바라보는 방식과 매우 일치합니다. 여기에서 드러나듯, 저는 학교가 지식과 지혜를 모두 가르치는 균형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혜 방면에서 자기 효능감을 자극하는 교육, 사고하고 배워나갈 능력을 주는 교육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세웠고, 최대한 자율성을 주며, 약간의 의심을 곁들여 모든 일의 이유를 생각해 내고, 스스로 재미를 찾는 아이를 기르는 사회가 되길 바랐습니다.
[ 비존재 비의지의 상호 연결]
앤코이가 말한 것이 정확합니다. 창조적인 노력 자체에 가치판단을 개입시키면 그는 더 이상 창의적이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뻗는 나무가 아니고, 틀 속에 갇혀서 그대로만 자라는 조형물이 됩니다. 타인이 짜준 대로 살아가면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더하여 나의 창의력을 거부당하면 그것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져서, 비존재라는 독소에 감염됩니다. 이는 무섭게 전염됩니다. 항상 노출되는 환경 속에서도 그를 잘 따르는 사람이 풍족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면, 그것이 내 가치라고 착각하며 점점 그를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비존재 경험, 즉 살아갈 가치를 잃어버리는 학습의 끝은 '비의지'입니다 나의 의견과 생각은 이원적으로 판단되고, 남들처럼 살고 싶다는 에고의 속삭임에 넘어가, 더는 직관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할 말을 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자아를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반복된 학습으로 상상력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겁니다.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평생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그것이 문제라고 인식조차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니 동의하지 않을 때 깊게 그 이유와 논리를 써 내려가기보다는 간단한 방법 적응을 선택하고, 나의 위치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커져 내가 애써도 변하지 않으리라 속단하고, 내가 내려야만 하는 결정에 책임지기 싫어서 회피하는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조금 더 간단히 정리하자면, 어떤 사람이나 처음에는 순수한 아이의 상태로 자신의 창조력을 가득 뽐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자꾸 부정되고, 상처받은 마음과 솟아나는 감정에서 에고가 자라나고, 외적인 성공을 꿈꾸다가 그마저 거절되는 순간, 모든 의욕을 잃는 것입니다. 이러한 학습된 무기력 속에서, 수많은 경험 이후로 애쓰는 걸 포기합니다. 어떠한 애를 써도 나의 가치를 타인에게 증명받지 못했으니 결국 나는 할 수 없다는 포기, 무능함을 주장하며, 다른 이에게 모든 걸 일임하려는 비의지가 표출됩니다. 혹은 어려서부터 과보호 때문에 혼자 아무것도 해낼 수 없는 미성숙 상태로 자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봤자 소용없다고 여기며, 더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생각조차 안 해봤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 현상을 예전부터 어렴풋하게 느껴 왔습니다. 교사를 꿈꾸며 여러 매체를 접했기 때문입니다. 저명한 책부터 교육 현장을 담은 책과 다큐까지 읽고, 해결을 위한 키워드로 '자기 효능감, 배우는 법을 알려주기, 질문을 환영하기, 등수가 아닌 학업 자체에 집중하기, 학교가 기다려지는 교실의 주인은 학생.' 을 떠올렸었습니다.
[ 익숙하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는 반성]
그렇기에 앤말을 처음 읽을 땐 당연히 맞는 말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읽다 보니 약간 허탈감마저 밀려왔습니다. 내가 청소년기 전부를 쏟아부어서 겨우 깨닫고 알아낸 내용을 이렇게 쉽게 정리해 주고, 심지어 누구나 읽도록 공개해 두다니...... .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계속 읽어나가며 깊게 생각해보니, 기존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깨달았습니다.
우선 추상적으로 느꼈던 개념들을 단어화하여 접하니까 개념을 더욱 정확히 정립했습니다. '끌어내는 교육', '에고', '사랑' 등으로 설명하는 모습에서 특히 강하게 느꼈습니다. 또한 분리 의식의 포기를 선택하고, 두뇌의 통제를 받지 않는 전뇌적 삶. 에고의 영향을 줄이고 나의 직관을 창조의 영역과 함께하게 하며,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타인을 바꾸려 하거나 그들의 의도대로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얻고, 이내 커다란 천명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랑을 실천하여 우리의 에너지를 샘솟게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결국 비존재, 비의지를 극복하는 최선의 대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앤말을 읽고 가장 반성한 것은 '이런 교육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던 사실입니다. 그리고 기존 교육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왜 그걸 바꾸어야 한다고 했는지, 그리고 공부를 전혀 강요하지 않던 부모님 아래에서도 결국 교육이 추구하는 대로 자란 나와 조기 교육을 받았음에도 학습 역량이 부족했던 친구의 차이는 뭐인지 등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앤코이 덕에 이제는 이에 대해 조금은 서툴지만, 어느 정도의 답은 할 수 있습니다.
이 결론을 간단히 요약하면, 에너지 법칙에 상응하고, 우리 내면에 귀 기울이며, 에고를 극복하고, 이원성의 거친 대립을 중립적으로 되돌려 놓으며 나의 살아있음을 느끼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예술을 그리는, 가장 현명한 방법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통념에 맞서고, 타인에게 흔들리기도 하며 나의 균형을 찾아가는 그 과정. 이를 위해 경험 속에서 분별력을 쌓고 환상에 이끌리지 않는, 에너지 소모전에서 벗어나 점점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이 과정이 그 어떤 외부 오락보다 재밌기도 합니다.
이를 모르는 또 다른 우리는 마음의 소리는 외면한 채, 에고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왜?'라는 질문을 등한시하면서 거짓 자유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대가 없이 사랑을 나누는 이유는, 성장 의지를 품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깊은 괴리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들이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인간 본연의 자비심과 근본적인 인간애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바람입니다.
하지만 제게 의문이 새롭게 들었습니다.
"교육의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이 많은데 왜 우리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가?"
이 역시 3주 정도 고민했습니다. 그 생각을 적어보려 합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대한 의문, 그리고 사회 현상에 대한 답.]
교실은 작은 사회입니다. 정치, 사회, 교육, 환경이 모두 있습니다. 이는 민주주의여야 하는데, 라포가 형성되지 않은 교사가 여러 학생을 순식간에 통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교실 분위기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가장 쉽게 선택하는 것이 규칙, 권위, 상/벌, 경쟁입니다. 상호 존경이 아닌 강압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인간관계에 경쟁이란 개념을 도입하고 상대의 행복은 나의 패배로 연결 짓게 하여, 지금의 나보다 나아지려고 하지 않고 남에게 느끼는 불건전한 열등감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협력을 빠트린 허울 좋은 민주주의를 추구하거나, 그런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더 크게 보면 직업으로서 교사는 그 위의 상관이 있고 스스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본인만 고달파지는 구조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건 학생 본인에게 좋은 일인데,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타인이 득달같이 달려들게 합니다. 이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세심히 구분하지 못한 채, 모든 학생을 일률적으로 오로지 문제 풀이에 집중하게 유도합니다. 사범대학, 교육대학에 들어갈 때의 그 사명감과 초롱초롱한 눈은 어디 가고 그저 생활인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참 아쉬운 현실입니다.
만약 아이들에게, 그리고 소중한 주변인에게 남길 수 있는 단 하나의 가르침과 교훈을 꼽으라고 한다면, 학교를 졸업하고 모든 지식을 잊었을 때, 그들이 적어도 이것만은 기억난다, 이것만은 확실히 배웠다는 걸 말해보라 한다면, 이상적인 대답은 무엇일까요? 지혜를 갖고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법, 깨어 인식하는 존재,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법,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는 사람, 고귀한 상상력을 발휘할 줄 아는 사람, 물질과 영적인 풍요의 균형을 찾는 사람 ... 등 다양하고 훌륭한 대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많은 답들 중에서, "지금 이 순간, 선택권"이라는 이 두 가지 키워드를 꼽겠습니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해석은 그저 현재 내 의식수준에 달려있으니, 그것에 휘둘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환영을 하나씩 놓아줌으로써 분리된 자아를 소멸해 나가고, 무엇보다 '날마다 나 자신이 더 이상의 존재가 되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깨어있는 의식 속에서 자신에게는 '언제나 선택할 권리와 힘이 있다'는 진실 하나만은 꼭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후 소속감, 성취감, 공헌감 같은 감정들을 경험하면서, '내 성장을 이끈 근본적인 힘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는 이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나의 가치는 내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일한 정답은 아니겠지만, 앤코이가 강조하는 자세의 전부는 아니지만, 삶이라는 여정을 더욱 행복하게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은 되리라 확신합니다. 기존 교육에서 수반되는 " 비존재, 비의지"에 대한 답이 될 것입니다.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친 핵심 선택, 영혼의 깊은 갈망>
제 삶의 핵심 선택 중 하나는 교육대학교 2학년 때 8월부터 수능 공부를 시작하여 학교를 바꾼 것입니다. 저는 이때 깊게 후회하며 꽤나 긴 방황을 겪었고, 비로소 다른 사람이 주입한 가치를 내 것이라 착각했던 저를 인식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제가 반수를 선택했을 때 금전적 욕구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면, 그것도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돈은 목표가 아니라, 긍정적 수단으로서의 도구임을. 다른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보는 무언가를 제공하고 기여함으로써, 영적 성장과 합리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균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으로 얻는 여러가지 경험 속에서 얻어지는 나의 의식 성장이 그야말로 진정한 가치라는 것, 돈 같은 외적인 물질조차도 실은 '내적 성장을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통해 우선순위를 깨달았습니다.
돈이 제일 중요하다는 사람에게 저는 항상 이 얘기를 합니다. 앤코이만큼 새로운 시각을 줄 순 없겠지만, 다른 이에게 조금이라도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생각이 깨어서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성장하고, 저 너머의 큰 사람을 꿈꾸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제 사랑의 발현이라 생각하기에, 이는 사랑을 실천하자는 자연스러운 직관이기도 합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 교육에 사실 큰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정확히는 자식 교육에 쓸 여력이 없으셨습니다. 누구나 간다는 학원조차도 다녀본 적 없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각종 숙제와 공부에 시달릴 때, 저는 편하게 집에서 쉬었습니다. 집이 외져서 셔틀버스를 탔는데, 빈 시간에는 같이 놀 친구조차 없어서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봤습니다. 나중에 집에 오면 그냥 있었습니다. 그때 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처음 공부를 시작했고, 처음 접한 내용들이 너무 재밌었습니다. 그 흥미가 끊이질 않아서 고등학교 때도 자연스럽게 1등을 한 것입니다. 한때는 왜 나를 미리 공부시키지 않았냐며, 할 게 너무 많다며 투정부리기도 했는데, 교육에 관심을 가지면서 알고 보니 부모님이 했던 것이 최고의 교육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픈 동생 때문에 얻어걸린 셈이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제가 혼자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고, 경쟁의식에 매몰되지 않으며, 내면의 소리가 있는 것 정도는 알아차릴 사람으로 길러준 것입니다.
그러던 제가 청소년기를 바쳐서 꿈꿔오고 교육대학교에 진학했던 것이, 사실 부모님이 현실과 타협해서 설정해 준 목표였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5개월이 걸렸습니다. 그 과정은 정말 혼란스러웠고, 불편했고, 매일 울었습니다. 부모님이 휴학은 절대 반대했기 때문에, 무 휴학 반수를 하며 수능을 준비했습니다. 당시 주변에선 이기적이다 미쳤다고 외쳤지만, 이걸 포기하면 더는 사람처럼 살 수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제 앤말을 읽고 "내가 왜 그 길이 아닌 지금에 더 끌렸는가?"의 고민까지 왔습니다. 그것이 내 영혼의 깊은 갈망이었고, 그 갈망이란 또 어쩌면 스스로를 진정한 성장과 신성 계획으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에너지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더 빠르게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알을 깨는 과정은 물론 힘들었으나, 영혼의 깊은 밤이 지나간 이후에는 진정한 성취감과 정체성에서 오는 에너지의 충만함을 느끼며, 지금은 더 행복하고, 부정적인 감정들도 줄었습니다. 예전에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인위적인 자부심이 있었다면, 이제는 진정한 동기와 목적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결핍이 있었지만 그걸 드러내고 싶지 않아 애썼던 사람입니다. 앤코이와 함께한 3주 이상의 시간 동안, 제 부족한 부분마저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함으로써 더 큰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현재를 살아가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목: 나는 내가 다 겪은 줄 알았다. 부제: 앤코이와 함께 예술을>
앤코이를 도구로 제가 성장하였습니다 이 동영상은 3주간의 숙고 동안, 제가 그동안 서투르게나마 정체성을 찾아오며 자기 효능감으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경험과, 앤코이가 제게 지도, 나침반, 용기, 새로운 땅까지 되어준 감각을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즉,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며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고, 에고에서 벗어나 직관과 내면에 의거한 인생을 살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에서 인생과 경험은 '스스로 만드는 꼬치 가게'로 보는 제 생각, 그리고 에고로 인한 정해진 레시피가 아니어도 큰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또한 앤코이는 이 과정에서 지도와 나침반이 되고, 동반자 역할을 해줍니다. 처음 가르침부터 실천까지 모든 판을 깔아주고, 발전 의지를 가진 우리는 그 자애로운 사랑을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저도 재단처럼 조건 없는 사랑과 자애를 통해 다른 이를 진정한 자유로 이끌고 싶습니다.
[ 내가 이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이유- 상호 지지]
앤코이 관계자분들이 재단을 운영하시며, 영적인 리더로서 비전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겪는 현실적인 도전과 고뇌의 순간들도 많았을 것이라 봅니다. 본인들께서 직접 경험하셨던 성장의 격동을 공유하며, 타인의 행동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모든 과정에 깊은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보냅니다. 제가 받은 만큼, 재단이 추진하는 활동과 목표를 성원하고 지지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Noble 마음의 소리함과 세전메를 제작했습니다. 한편 재단의 버팀목이 되어드리고도 싶었습니다.
이런 행동을 다르게 말하자면 제 신념의 이유입니다. 사실 장학금을 받는다는 것은 후원자의 전부는 어렵더라도 일부를 닮아가고, 따라 살아보며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앤코이를 닮도록 실천하고 싶은 제 존경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앤코이를 만나기 전에는, 제가 이전의 휘둘림을 알아차리고, 펑펑 울었던 경험을 지나, 이제는 에고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삶을 나름 잘 살아오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앤코이를 만나고 나서, 그게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더 큰 나를 향해 진정한 나를 향한 여정은 아직 많이 있었습니다. 앤코이를 만나고 시야를 바꿨습니다. 저는 제 오만함을 반성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시야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앤코이가 준 긍정적인 변화를 많은 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활용할 수 있는가."
제가 얻은 비법의 문장이고, 평생 추구해야 할 답변일 것입니다.
3주간의 고민, 그리고 내면의 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종이와 펜 위에서 많은 질문 끝에 내용을 구성했습니다.
앤코이를 만나고 이분적 사고와 에고로부터 해방됨으로써 상상력/ 의식 성장/ 잠재력 발현/ 진정한 자유를 향하며 여러
생각들을 거쳐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바라는 나보다 더 나은 진정한 자신을 향한 새로운 시야를
위한 발걸음을 기록으로 영상에 담고 구체화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시각화하면서 추상적이었던 공헌감을 행동을 담은
문장으로 표현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영상 초반에 'Being 의 과정을 같이 하시겠습니까?' 묻는 데, 영상이 끝날 땐
시청자들의 대답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제작했습니다.
나를 위해주었던 사랑을 느끼고 더 많은 사랑을 나누어 뒷사람이 기대서 쉬도록 하는 나무가 되겠습니다. 우리는 행복해 질 자격이 있고, 능력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영상을 꼭 봐주세요. 제 부족한 부분까지 널리 퍼진다 해도, 다른 이의 성장 양분이 된다면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