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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의 숨은 의도 알기

앤코이 교육재단 2023-06-06 00:08 조회수 아이콘 46

인간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는 가장 일반적인 원인인, 누가 한 의견을 내면 다른 사람이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것입니다. 양쪽이 다 인간적인 수준의 의견이지만, 양쪽 모두가 자신의 의견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주장합니다.

많은 시대를 거치며 분쟁에 분쟁이 이어진 원인이 한 인간적 견해에 대립하는 다른 인간적 견해로 인해서임을 서로 보지 못하고 양쪽 모두 자신의 견해가 인간의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인간적인 판단에 반대하는 또 다른 인간적인 판단은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단지 분쟁과 혼란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한 사람이 특정한 문제에 대해 강력한 인간적인 판단을 할 때 세상은, 이에 상반되는 인간적인 판단을 하는 또 다른 사람을 보내주게 되며,  그 두 사람은 충돌하게 됩니다.


이원성 의식에는 항상 양극성이 존재하고, 상반되는 두 극성은 동시에 만들어집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은 앞서 나온 더 높은 진리이고, 그 진리에 반대하는 의견은 악마의 것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먼저 진실이 나온 다음 그 반대가 나왔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그 두 인간적인 견해가 이원성 의식에서 동시에 발생했음을 알지 못합니다. 


사회가 하나의 특정한 철학에 지배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것이 진리를 대변하고 다른 철학 체계들은 오류라고 믿도록 길들여졌습니다. 

여러 시대에 걸쳐 어떤 사고 체계나 종교, 정치 이데올로기, 철학이 출현할 때마다 나타난 경향은,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다른 관점이 오류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 절대적이라는 진리가 그 반대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분쟁을 일으켰으며, 이 분쟁은 종종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거의 천년 동안 유럽을 지배했지만, 우리는 소위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되는 것이 지구에 평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더 높은 진리는 사실 비이원적이고, 그 반대 극성을 가지지 않습니다. 진실로 이런 진리가 사회를 지배했다면 분쟁은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고 체계가 평화를 창조하지 못하고 분쟁만 잇달아 일으켰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우리는 그것이 높은 수준의 진리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 혹은 다수의 반대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원적 극성이었습니다.


이러한 논리를 이용해 사람들이 중립적인 진리, 더 높은 수준의 진리를 아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약간의 진실에 수많은 오류가 섞인 가르침을 만들어 사람들의 직관에 의한 분별력에 혼동을 줌으로써 쉽게 통제하고 원하는 것을 빼앗으려는 숨은 의도가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높은 권위에 의해 승인된 절대적 진리라는 주장을 함으로써 이를 사람들이 볼 수 없게 하고, 사람들 사이에 이미 분쟁의 가능성을 심어두었습니다.


이것은 심지어 종교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사실 신비주의는 과학적 관찰처럼 중립적이었습니다. 순수한 형태의 신비주의가 추구했던 것은 영적인 실재에 관한 이론과 교리 대신, 영적인 실재를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순수한 형태의 과학도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중립적으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신비 경험이나 과학적 관찰 모두 우리의 의식 수준에 상응하며, 우리는 현재의 의식 수준에서 그것들을 해석하게 됩니다. 따라서 신비 경험이나 과학적인 관찰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진정한 영성과 과학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점차 더 높은 이해를 추구하는, 결말이 열려 있는 과정입니다. 

지금 과학의 진보를 막고 있는 것은, 과학이 어떤 절대적인 진리를 밝혀냈다고 말하는 물질주의의 주장입니다. 물질주의 과학은 물질 우주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물질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물질 우주 안에 있는 원인과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가톨릭 교회가 2000년 전에 예수께서 행하신 본보기와 가르침을 순전히 인간적인 해석으로 덧칠했듯이, 물질주의는 순수한 과학적 관찰에 인간의 해석을 부여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소위 '무오류'의 교리들을 만들었고, 물질주의 역시 '무오류'의 과학적 교리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어떤 교리에 오류가 없다고 믿을 때, 그 교리를 넘어서 보지 않기 때문에 성장이 멈춰버립니다.


사람들이 적을 죽여야 하고, 자기 나라를 지켜야 하고, 그리스도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전쟁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들의 종교에 반대하는 자들을 죽임으로써 하늘나라에서 더 나은 자리를 얻게 된다는 관념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업보를 능가하는 큰 보상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모든 행위는 그 결과를 낳는다는 앎을 도외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인을 죽이면 지옥에 가지만 무슬림을 죽이면 하늘나라에 간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행위의 결과를 피할 마법적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신에게 반대하는 악하고 잘못된 부류의 사람들을 죽이면 지옥에 가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보상을 받게 되므로, 살인해도 반드시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것은 뱀의 논리입니다.

칼로 사는 자는 칼로 죽게 된다는 것은 무엇이 옳은지 약간의 직관적 감각만 갖고 있어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특별해서, 다른 사람들과 달리 어떤 행동을 해도 결과를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일반인들은 누릴 수 없는 특권을 가진 계층 일부는 부패를 통해 처벌을 모면하거나 본인들이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재정권의 기반은, 독재자가 자신은 특별하며,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은, 대중이 독재자를 믿게 되면, 그들은 그 독재자가 지은 잔학행위들의 카르마 일부를 떠맡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부 가톨릭 사제들이 아이들을 성추행하면서 카르마를 짓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 또한 그 교회와 기관의 중요성과 신성함을 진실로 믿고 있는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그 카르마 일부를 떠맡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합니다.

일부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의 존속이 매우 중요하다 믿어 충성심으로 소아성애를 눈감아 주기도 하고, 소아성애 문제로 교회가 망하는 결과를 초래할 필요는 없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로마 교황청에 부패 현상이 있으며, 체계적인 변화를 가져올 필요성도 함께 묻어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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